클래식 듣고 크는 '민속한우', 日와규에 도전장

입력 2021-05-20 16:54   수정 2021-05-28 15:39


한우 축사가 가까워지는데 냄새라고는 보리 건초에서 나오는 특유의 향뿐이다. 2000마리를 사육하는 공간엔 클래식이 은은하게 울려퍼졌다. 한우 축사의 상징과도 같던 ‘쇠파리’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축사 주인은 농장과 담도 두지 않고 옆에 집을 짓고 살고 있다. 최근 방문한 한우 브랜드 민속한우의 경북 안동 농장은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민속한우는 일본 ‘와규(和牛)’에 도전장을 낸 토종 축산업체다. 국내에서 고급 소고기의 기준으로 알려진 ‘마블링’이 아니라 세계 미식가들의 판단 척도인 ‘올레인산’ 함유량으로 승부를 걸고 있다.
축산 농가와 이익 공유하는 농업기업
‘올레인산’은 국내외 축산 전문가들이 소고기 특유의 고소한 맛을 결정하는 요소로 꼽는 지방산이다. 와규의 근내(筋內) 지방산 가운데 올레인산 비율은 52% 이상이다. 많게는 60%까지 나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비해 한우 등급 판정 기준은 육량과 육질만으로 판단한다. 맛에 관한 기준은 없다. ‘투뿔(1++)’은 흔히 ‘꽃이 피었다’고 표현하는 ‘마블링’의 정도로 정해진다. 권혁수 민속한우 대표(사진)는 “한우도 글로벌화를 이루려면 올레인산을 기준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며 “민속한우는 올레인산 50% 이상의 한우 출하 비중을 꾸준히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

민속한우는 경북 56개 축산 농가가 연합해 약 3만 마리를 사육한다. 군위엔 첨단 도축·가공시설(LPC)을 운영하고 있다. 민속한우가 와규에 도전장을 낼 수 있는 것은 일관된 품질의 한우를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어서다.

입식(송아지를 축사에 넣는 것)에서부터 사육 및 도축, 가공, 출하까지 일관 시스템을 구축한 국내 유일의 농업기업이다. 권 대표는 “56개 농가의 사육 방식을 100% 통일함으로써 어디서 출하되든 똑같은 품질의 한우를 내놓고 있다”며 “본사가 금융을 지원하고 일선 농가와 이익을 공유하는 시스템 덕분”이라고 말했다. 무이자 혹은 저리 대출로 농가를 지원하는 농협중앙회와 달리 ‘인센티브’를 극대화하는 방식이라는 게 권 대표의 설명이다.
GS리테일 축산농가 상생 선순환
민속한우의 성장엔 GS리테일이라는 ‘키다리 아저씨’의 든든한 지원이 자리잡고 있다. 본사 안동 농장에서 생산되는 소고기 전량을 GS리테일에 독점 공급한다. 이재혁 GS리테일 수퍼사업부 팀장은 “‘우월한우’라는 브랜드로 민속한우 제품을 GS더프레시 등에서 판매하고 있다”며 “유통업체가 지정 한우 농장을 운영하는 유일한 사례”라고 설명했다.

GS리테일이 본격적으로 민속한우를 지원하기 시작한 건 2012년이다. 당시 상품본부장이던 허연수 부회장은 ‘GS=한우 맛집’이라는 공식을 만들고 싶어 했다. 당시 유통업계에선 처음으로 선도금 명목으로 상생 대출 15억원을 지원했다.

2010년 구제역 파동으로 1000마리가량을 땅에 묻어야 했던 권 대표는 GS리테일의 결단 덕분에 재기에 성공했다. 2014년에도 20억원의 선도금을 지원받았다.

대기업과의 상생은 선순환 고리로 이어졌다. 자금이 넉넉해지자 민속한우는 친환경 축사를 만드는 데 돈을 아끼지 않았다. 민속한우 안동 본사 농장(2000마리 사육)만 해도 가로 5m, 세로 10m 공간에 소 7마리를 키운다. 마리당 차지하는 공간이 2.1평 규모로, 일반 한우 농가 밀집도의 절반 수준이다. 민속한우의 1+등급 출현율은 75%다. 전국 평균 출현율이 50~60%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고품질 제품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있다는 얘기다.

민속한우는 인근 안동생명과학고와 함께 국내 최초로 육가공학과 개설을 추진 중이다. 군위 LPC에 근무하는 스무 살 청년들의 초봉은 연 3900만원이다. 권 대표는 “대기업의 지원을 지역과의 상생으로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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